내일이 저희 학교 논술시험일이랍니다. 작년에는 수능이 12월로 밀린 덕분에 논술시험도 12월 수능 뒤로 밀렸었는데, 이번에는 제때 시행하는 것 같네요. 재작년 같았으면 교문 앞에서 잘 보고 오라고 응원해 주고 그러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은데, 작년에도 그랬듯이 올해 역시 논술 수험생 빼고는 못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응원해주는 사람 대신 응원해 주는 입간판이나 현수막은 있겠죠.
…까지가 스포어에 적어놓은 글이고, 이제 본격적인 썰이나 풀어보겠습니다.
때는 2020년 12월 7일, 그냥 평범한 월요일이었습니다. 수능 끝난 지 4일 지났을 때라 거의 대부분의 고3들은 신나게 놀고 있었을 때였죠. 물론 전 아침부터 시험을 보러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랑 택시를 불러서 잘 가고 있었는데, 부천에서 서울 나갈 때쯤부터 길이 막히기 시작하더니 더 가니까 아예 발 디딜 틈도 없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하필이면 저희 나갔을 때가 좀 이른 출근 시간대였던 겁니다. 덕분에 서울 러시아워에 딱 걸려버렸고, 저희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근처에 오목교역이 있는 겁니다. 냅다 지하철로 갈아탔죠. 그나마 빠르게 지하철로 갈아탄 덕분에 입실 마감 1시간 전에 학교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코로나가 기승인 상황, 시험장에 도착한 수험생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게 무엇일까요? 뭐긴 뭐겠어요, 당연히 검역이죠. 대강당에서 발열 체크를 진행한 후 시험장으로 입실해야 했습니다만, 문제는 그때 문과대학 학과 경쟁률이 못해도 89:1은 넘겨서 시험 보러 온 수험생 인파가 어마어마했다는 겁니다. 덕분에 대강당까지 들어가는 데 한 20분 걸렸습니다.
들어가는 게 고역이었지 검역은 뭐 별 거 없었습니다. 그냥 문진표 제출 – 발열체크 – 검역 확인 팔찌 및 손소독 티슈 등 배부. 이게 다였습니다. 진짜로요. 참고로 그 팔찌 어찌저찌 잘 떼어내서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검역을 통과했으니 이제 시험장을 찾아야 했습니다. 시험장 찾을 겸 캠퍼스 구경까지 했는데, 역시 연세대답게 아름답더군요. 교문이랑 언더우드관 앞에는 선배님들의 응원 메시지가 적혀 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었고,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었습니다. 근데 뭐 이거 찍고 돌아다닐 시간이 있나요. 빨리 시험장 들어가야지. 덕분에 저 사진들은 모두 시험 끝나고 찍은 사진들입니다.
아무튼 무사히 시험장을 찾아서 아무 자리에나 들어가 앉아 학원 자료를 마지막으로 들여다 보다가, 마침내 시험이 시작되고 저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시험지를 받았는데… 이게 웬걸, 문제가 생각보다 너무 쉬운 겁니다. 학원에서 본 문제들은 무슨 흉악한 삼자비교 문제였는데, 실전에선 그냥 단순 비교 문제가 나온 겁니다. 1번 문제뿐만 아니라 그냥 수리논술을 포함한 모든 문제가 굉장히 쉬웠습니다. ‘이건 되겠다’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근데 행복도 잠시, 답안지를 걷어가는 순간 다른 수험생들의 답안지가 보였는데, 아니 세상에. 그래프 그리는 문제가 있었는데 다들 일차함수 그래프가 이차함수 그래프를 관통하도록 그린 겁니다. 전 접하게 그렸었거든요. 알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의견을 보일 때 나 혼자서 다른 의견을 보이면 괜히 쫄리는 거. 덕분에 나올 때 상당히 찝찝하게 나와야 했었습니다. 시험 막바지에 코 골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건 이전 편에 이미 풀었으니까 여기선 그냥 넘어갈게요.
나오는 거야 뭐 평범했습니다. 긴장 다 풀리고, 통쾌하면서도 허탈했죠. 이 와중에 문제 쉬웠다고 수리논술만 풀었다면 붙었을 거라고 통화하는 사람은 덤이고요. 다른 사람이 붙든 말든 어쩌겠습니까. 제 갈 길 가야죠. 그렇게 캠퍼스를 거닐다가, 기념품 파는 천막에 들러서 한참을 구경하다 만 원 짜리 에코백 하나 사서 나왔습니다.
기념품 구경하느라 한참을 있었는데, 여전히 정문에 사람이 많더라고요. 어쨌든 이제 시험 끝났으니까 신촌 구경도 하고 막 놀러다녀야죠? 천만에요. 점심도 못 먹고 다음 시험 대비하러 논술학원 끌려갔습니다. 시험 남아있는 고3이 뭘 할 수 있겠어요. 공부해야지.
그렇게 신촌을 떠나고 17일 뒤… 이미 최저 때문에 한 학교를 날린 상황에서 수능 성적이 생각보다 더 안 좋게 나온 덕에 한 학교를 추가로 날린 저는 멘탈이 산산조각난 채 바퀴 달린 의자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베란다 창문 유리를 깨 버리고 말았고, 그 달 용돈을 까이고 말았습니다. 근데 제가 그해 7월에 바지 하나 찢어먹고 학평에서 111112 받아서 전교 (공동) 1등 했었거든요. 이게 유리 깨먹고 도로 발동된 것 같습니다.
12월 26일 밤에 논술 학원 원장님에게서 메시지가 하나 왔더라고요. 연대 논술 어떻게 됐냐고, 낙방했냐고. 전 합격자 발표가 12월 27일 그대로인 줄 알고 있었고, 딱히 활동하던 수능 커뮤니티 같은 것도 없어서 발표일이 하루 당겨진 걸 알 수가 없었죠. 아무튼 전 문자를 보자마자 입학처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떨리는 마음으로 이름, 수험번호, 생년월일을 집어넣고 재빠르게 화면을 종이로 가렸습니다. 천천히 종이를 내려가면서 합격여부를 보려고 했는데, 대충 이 정도에는 적혀 있겠지 싶은 지점까지 갔는데도 합격여부가 안 적혀 있는 겁니다. 답답해진 저는 종이를 옆으로 밀었는데, 뭔가 사진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뭐지 하는 심정으로 종이를 치워낸 제 앞에 기다리고 있던 것은…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커다란 글씨와 총장님의 축하 동영상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합격이었던 겁니다. 보자마자 직접 봤으면 엄청 우스꽝스러웠을 표정으로 연대 붙었다고 괴성을 지르며 어머니 방으로 뛰어들어갔고, 어머니도 이 화면을 직접 보시고는 얼싸안고 방방 뛰었습니다. 이 와중에 할머니는 불난 줄 알고 불 났냐고 하셨고요. 여담이지만 제가 시험 전부터 가족들한테 연대 붙으면 총장님에게 절 한다고 했는데, 진짜로 총장님 축하 영상 틀어놓고 절 했습니다. 진짜로요.
제 연세대 논술 시험 썰은 여기까집니다. 새벽에 머리 부여잡고 쓰니까 글 안 써지네요. 여러모로 두서없이 쓴 글이지만, 끝까지 즐겁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거 쓰면서 확인해 봤는데, 그래프 그거 접하게 그리는 거 맞더라고요.
+2) 물론 지금 그 문제 풀라고 하면 절대 못 풉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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